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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서” 못 간 그곳, 60년 만에 최고령 우주인으로 꿈 이루기까지 [김정화의 W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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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ㅣ 수정 : 2021-07-24 10:00 김정화의 WWW 섹션 목록 확대 축소 인쇄

<17> 미국 우주 비행사 월리 펑크

미국 우주비행사 월리 펑크가 20일(현지시간) 블루오리진의 우주왕복선 뉴 셰퍼드호에서 귀환한 후 팔을 벌려 보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 미국 우주비행사 월리 펑크가 20일(현지시간) 블루오리진의 우주왕복선 뉴 셰퍼드호에서 귀환한 후 팔을 벌려 보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아폴로 11호가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지 꼭 52년째인 지난 20일(현지시간), 10분간의 우주 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친 블루 오리진의 로켓 ‘뉴 셰퍼드’는 각종 신기록을 썼다. 세계 최고 부자이자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는 민간 기업인으로 가장 높은 고도 106㎞에 도달했고, 18세의 네덜란드 청년 올리버 데이먼은 블루 오리진의 첫 유료 고객이자 최연소 민간 우주인이 됐다.

그중에서도 가장 돋보인 인물은 단연 ‘최고령 우주인’ 자리에 등극한 82세의 월리 펑크다.

이번 비행으로 주목받기 훨씬 전부터 월리 펑크라는 이름은 미국에선 여성 우주인의 상징으로 꼽혔다. 그는 1960년대 미 항공우주국(NASA)의 우주 비행사 시험을 통과하고도 여자라는 이유로 우주에 나가지 못한 ‘머큐리 여성 13인’ 중 한명이다.
방사능 물 마시고, 오감 차단 온수 탱크서 10시간 버텨
우주 비행사 월리 펑크가 2019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위치한 미 항공우주국(NASA)의 연구소인 글렌 연구 센터를 방문한 모습. NASA제공·AP 연합뉴스

▲ 우주 비행사 월리 펑크가 2019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에 위치한 미 항공우주국(NASA)의 연구소인 글렌 연구 센터를 방문한 모습. NASA제공·AP 연합뉴스

미국 뉴멕시코주에서 가게 체인점을 운영하는 부모님 밑에서 1939년 태어난 그는 야외 활동을 즐기는 활달한 아이였다. 자전거를 타고, 승마를 하고, 스키와 사냥, 낚시가 일상인 삶이었다.

하늘을 나는 꿈을 꾸게 된 것도 아주 어릴 때부터다. 그는 7살 때 처음 나무로 모형 비행기를 만들었고, 그로부터 2년 뒤 첫 비행 수업을 들었다. 펑크는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나는 여자애가 할 거라고 여겨지지 않은 모든 일을 했다. 못할 일은 없었다”고 돌아봤다.

미주리주 컬럼비아에 있는 스테판스대에 진학한 그는 대학 역사상 최연소로 졸업생 공로상을 받았고, 비행 동호회 ‘플라잉 애기스’(Flying Aggies)로 유명한 오클라호마주립대에서 각종 비행 강사로서의 학위를 땄다. 플라잉 애기스에서 펑크는 국제 대학 항공 대회에 나갔고, ‘우수 여성 파일럿’ 등 각종 트로피를 거머쥐기도 했다.
조종사 제복을 입고 있는 월리 펑크. 월리 펑크 홈페이지 캡쳐

▲ 조종사 제복을 입고 있는 월리 펑크. 월리 펑크 홈페이지 캡쳐

우주 비행사라는 꿈에 완전히 빠지게 된 건 21살이던 1961년이다. 나사의 머큐리 프로젝트에서 일했던 의사 윌리엄 러브레이스는 여성이 남성만큼 유능한지 알아보려고 ‘우주의 여성’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25명의 여성만이 뽑혔고, 엄격한 신체·정신 테스트를 거쳐 13명이 최종 선발됐다. 펑크는 그중 3등을 차지할 정도로 우수했다.

이번 뉴 셰퍼드 탑승객들에겐 여러 조건이 있었다. 나이, 신체 조건뿐 아니라 1분 30초 이내에 7개 층을 오를 만큼 체력이 충분할 것, 15초 이내에 좌석 안전벨트를 잠그거나 풀 수 있을 것, 캡슐이 지상으로 하강할 때 생기는 최대 5.5G의 중력 가속도를 견딜 수 있을 것 등이다.
제프 베이조스가 소유한 우주탐사 기업 블루오리진은 1일(현지시간) 여성이라서 우주비행사가 되지 못한 월리 펑크가 이달 20일로 예정된 우주여행에 ‘명예 승객’으로 동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사진은 과거 펑크가 파일럿 지러 비행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블루 오리진 제공 AFP 연합뉴스

▲ 제프 베이조스가 소유한 우주탐사 기업 블루오리진은 1일(현지시간) 여성이라서 우주비행사가 되지 못한 월리 펑크가 이달 20일로 예정된 우주여행에 ‘명예 승객’으로 동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사진은 과거 펑크가 파일럿 지러 비행기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블루 오리진 제공 AFP 연합뉴스

이 까다로운 조건은 펑크에겐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80대 노인이지만, 그가 머큐리 프로그램 때 거친 것에 비하면 간단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이 프로그램은 지독하게 엄격한 과정을 요구했다.

국제 여성 조종사 단체 나인티나인스(Ninety-Nines)에 따르면 당시 시험은 무려 3단계에 걸쳐 진행됐다. 방사능에 노출된 물을 마시는 것부터 뇌파를 기록하기 위해 머리에 수많은 바늘을 꽂는 것, 양쪽 귀에 차가운 물을 부어 넣는 것, 약 1m짜리 고무호스를 삼키는 것까지 포함됐다.

오감이 철저하게 제거된 채 무중력 상태를 견디는 온수 탱크 시험도 있었다. 소리와 빛이 차단된 약 2.5m짜리 탱크 안에서 환각에 빠지지 않고 있어야 했는데, 여기서 펑크는 무려 10시간 35분이나 버텼다.

“여자는 안돼” 좌절 대신 1만 9600시간 비행 훈련
1991년 미국 앨라배마주 헌츠빌 우주캠프에 참여한 월리 펑크. 월리 펑크 홈페이지 캡쳐

▲ 1991년 미국 앨라배마주 헌츠빌 우주캠프에 참여한 월리 펑크. 월리 펑크 홈페이지 캡쳐

이렇게 악독한 시험을 모두 거쳤지만, 펑크와 동료들은 결국 우주로 나가진 못했다. 당시 여성들은 전투기 조종사가 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펑크는 이후로도 나사에 4번이나 재도전했지만, 나사는 이번엔 공학 학위가 없다는 이유로 그를 거절했다.

하지만 그는 결코 자신의 꿈을 저버리지 않았다. 우주 비행을 하고 싶다는 열망은 갈수록 강해졌다. 그는 그만두고 싶었던 적 있느냐는 질문에 “천만에. 절대 없다”고 단호하게 답했다.

“더 높이, 더 빨리, 더 길게. 그게 내 좌우명이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나는 긍정적인 사람이고, 그만두는 사람이 아니다.”

비록 나사에서의 우주 비행은 좌절됐지만, 펑크는 포기하지 않고 다른 방식을 찾아 나섰다. 항공 회사에서 공인 비행 지도사 등의 직책을 거쳤고, 1971년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연방항공국(FAA) 검사관이 됐다. 조종사 인증과 비행 시험 절차, 사고 처리 등을 포함하는 역할이다.

또 3년 뒤에는 여성 최초로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의 항공 안전 조사관이 됐고, 비행기 사고 요소와 이를 조사하는 방법을 다뤘다.
월리 펑크가 자신의 젊은 시절 사진을 들고 포즈를 취한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 월리 펑크가 자신의 젊은 시절 사진을 들고 포즈를 취한 모습. 로이터 연합뉴스

펑크가 조종사로서 보유한 비행 기록은 1만 9600시간 이상이다. 후배 3000명에게 조종을 가르쳤고, 아프리카와 유럽, 중동 등에서 약 15만㎞를 비행했다. 지구 둘레를 4바퀴 돈 거리와 맞먹는다.

책 ‘우주를 위한 월리 펑크의 경주’를 펴낸 과학 저널리스트 수 넬슨은 “펑크의 목표는 자신의 능력을 시험 때마다 최대한 발휘하는 것뿐 아니라 이전 사람보다 더 나은 방식을 시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펑크는 엄청난 추진력과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며 “이는 전형적인 초기 우주 비행사 타입이다. 그는 이 틀에 꼭 들어맞는다”고 평했다.

펑크는 이후에도 끊임없이 우주 훈련 센터에서 훈련과 비행을 해왔고, 2003년 한 인터뷰에선 “선구자가 되고 싶다. 최악의 방법으로 우주에 가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2010년엔 버진그룹 리처드 브랜슨 회장이 만든 버진 갤럭틱의 우주여행 티켓을 사는 데 20만달러를 투자했다. 그가 평생 모은 돈이다.

“선구자 여성 선배 덕분에 성차별 장벽 무너져”
1995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열린 우주왕복선 발사 현장에서 우주비행사 월리 펑크(왼쪽 두번째)가 ‘머큐리 13’ 회원들과 포즈를 취한 모습. 머큐리 13은 1961년 미국 최초의 유인위성 발사 계획인 머큐리 프로젝트에 따라 선발된 여성들이다. 제프 베이조스가 소유한 우주탐사 기업 블루오리진은 1일(현지시간) 여성이라서 우주비행사가 되지 못한 펑크가 이달 20일로 예정된 우주여행에 ‘명예 승객’으로 동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나사 제공 AP 연합뉴스

▲ 1995년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열린 우주왕복선 발사 현장에서 우주비행사 월리 펑크(왼쪽 두번째)가 ‘머큐리 13’ 회원들과 포즈를 취한 모습. 머큐리 13은 1961년 미국 최초의 유인위성 발사 계획인 머큐리 프로젝트에 따라 선발된 여성들이다. 제프 베이조스가 소유한 우주탐사 기업 블루오리진은 1일(현지시간) 여성이라서 우주비행사가 되지 못한 펑크가 이달 20일로 예정된 우주여행에 ‘명예 승객’으로 동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나사 제공 AP 연합뉴스

이번에 펑크의 우주 비행이 주목받는 건 단순히 한명의 인간이 해묵은 꿈을 이뤘기 때문은 아니다. 그의 일생 전체가 그간 여성의 일이 아니라고 여겨진 분야의 장벽을 깨뜨린 망치와도 같기 때문이다.

항공우주 분야의 여성 단체인 우먼 인 에어로스페이스(WIA) 의장 레베카 카이저는 “우주 비행사가 되려는 첫 시도 이후 60년이 지난 지금, 그는 마침내 승리했다”며 “펑크는 여성들이 한 번 거부당한 기회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어떤 분야에서든 성 평등을 위해 노력하는 건 절대 늦은 때가 없다는 걸 증명했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에서 여성이 처음으로 우주로 나간 건 1983년에 와서인데, 첫 여성 우주 비행사 샐리 라이드는 펑크에게 전화를 걸어 “여성 선배들이 과거에 각종 테스트를 다 받은 덕에 후배들은 육체적 고통을 겪을 필요가 없었다”며 감사함을 전했다고 한다. 펑크와 동료들이 과거 겪어야 했던 고초가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뜻이다.
20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발사기지에서 블루 오리진의 우주비행선 ‘뉴 셰퍼드’호 탑승객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올리버 데이먼, 제프 베이조스, 월리 펑크, 마크 베이조스. AFP 연합뉴스

▲ 20일(현지시간) 미국 텍사스주 발사기지에서 블루 오리진의 우주비행선 ‘뉴 셰퍼드’호 탑승객들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올리버 데이먼, 제프 베이조스, 월리 펑크, 마크 베이조스. AFP 연합뉴스

펑크를 비롯한 여성 우주인들의 보이지 않는 수많은 노력 끝에 현재 우주 산업은 세상의 절반을 소외시키지 않는다. 2019년엔 처음으로 여성으로만 이뤄진 우주인들의 우주 유영이 이뤄졌다. 최근 나사는 아르테미스 달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18명을 남녀 동수로 맞췄고, 달에 가장 먼저 내리는 사람은 여성일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번에 제프 베이조스의 초청에 따라 버진 갤럭틱이 아니라 블루 오리진의 우주선으로 지구 밖을 체험한 펑크는 비행 전 소감을 묻는 영상에서 이렇게 답한다.

“더 기다리기 힘들 정도로 여행이 기대된다. 당신이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고 싶다는 마음만 먹으면 뭐든 이뤄낼 수 있다. 나는 아무도 해낸 적 없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

◆월리 펑크는 누구·Mary Wallace Wally Funk
1939 미국 뉴멕시코주 출생
1958 스테판스대 예술학사 학위
1961 나사 머큐리 여성 13인 통과
1964 스테판스대 최연소 졸업생 공로상 (Alumna Achievement Award) 수상
1971 미 연방항공국(FAA) 아카데미 수료 첫 여성 검사관
1974 미 국립교통안전위원회(NTSB) 첫 여성 항공 안전 조사관
2017 스미소니언 국립항공우주박물관 명예의 벽 등극
2021 블루 오리진 우주 비행으로 최고령 우주인 등극



김정화 기자 clean@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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