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다큐] 60년 역사 품고 사라지는 그곳, 종로4가 예지동 시계골목

박종현씨가 기스미(시계 수리용 렌즈)를 끼고 핀셋으로 작은 시계 부품을 꺼내고 있다.

골목 입구와 시계. 시계는 언제나 12시 17분이다.

재개발 등의 이유로 대부분의 상점이 셔터를 내렸지만 시계 골목답게 다양한 시계들이 여전히 자리에 남아 고객을 맞이한다.

한 상점 주인이 유리 진열장에서 시계를 꺼내고 있다.
기자라고 소개하니 대뜸 “어차피 사라질 거 찍어 가서 뭐해?”라고 묻는다. 체념과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는 대꾸였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종종 찾아오던 외국인 관광객마저 뚝 끊겼다. 유튜브를 보고 찾아왔다는 김봉재(29)씨는 “반세기 넘는 역사 동안 시계 장인이 한 곳에 모여 있는 이곳은 세계적으로도 유일무이한 시계 성지나 다름없다”며 “너무 늦게 알게 돼 아쉽다”고 말했다. 과거의 단골집을 찾아 한참을 헤매던 90대 노신사는 단골집이 골목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자리를 옮긴다.

시계 골목에 터를 잡은 지 36년째인 시계 장인 박종현(76·영신사)씨가 밝은 표정으로 작업을 하고 있다.

오후 5시가 다가오면 골목의 상인들은 하나 둘 시계를 정리하고 퇴근을 준비한다.
모름지기 흐르는 시간은 멈출 수 없고 시계는 움직여야 존재의 의미가 있다. 하지만 가끔은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할 때가 있다.
지금은 세상의 시선에서 비켜나 가까스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마저 새 건물들에 밀려나 흔적만 남게 되는 날이 오겠지. 골목 입구의 멈춰진 시계처럼 이곳도 여기서 멈췄으면 좋겠다. 이대로 사라져 버리지 않고 역사 속에서 그 가치가 시간의 더께 아래서 조용히 더 빛나기를…. 가만히 마음의 시계를 멈춰 본다.
2021-09-03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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